고액 강연료 논란,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최근 포털사이트에서 김제동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가 고액강연료가 나온다. 그는 진정 고액 강연료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사람인가? 이러한 논란의 이면에는 어떤 사실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자.
연예인 김제동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왔다. 남다른 입담을 가진 대구 촌놈이 상경해서 이른바 대박을 치면서 공중파에서 종횡무진하다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른바 ‘연예인 블랙리스트’로 인해 공중파에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 정권에서 반정부 행사에 자주 참여한다는 이유로 반정부 연예인으로 낙인이 찍혔고, 그로 인해 순식간에 우리 눈에서 8년이 넘는 동안 사라졌다. 그러다 정부가 교체되면서 MBC가 정상화되어 라디오와 TV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를 눈에 가시로 생각하던 세력들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보수세력들, 그들에게 김제동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이미지와 인기로 연명을 하는 것인데, 그러한 이미지에 고액 강연료라는 물감을 뿌림으로써 많은 국민들이 김제동에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도록 만들었다. 여론이 들끓자 보수 언론은 일제히 포문을 정부와 연관하여 열었다. 지방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가 의도적으로 김제동을 초빙하여 고액 강연료를 지급하는 등 일감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과연 사실은 무엇일까? 보수 언론은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표면적으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되는 강연을 하고 1~2천만원을 받는다는 것은 일반인이 보기에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공공기관에는 강의료 기준이 있다. 강의료는 학력과 경력에 따라 금액이 정해져 있으며, 작성한 문서의 분량에 따라서도 강의료가 지급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김제동의 강의료는 시간 당 3만원 전후가 가장 적당하다. 그렇다면 김제동이라는 연예대상을 수상한 연예인이 6만원 정도의 강의료를 받고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다. 이는 김제동이 출연하는 행사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반적인 강의는 청중보다 전문성을 가진 강사가 청중에게 연수를 하는 식이라면 김제동은 강의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김제동이 청중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학력이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강의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는 전국을 다니며 ‘토크 콘서트’를 하는 것이다. 콘서트는 강의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가수와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김제동은 자신의 장기인 말을 가지고 콘서트를 해서 청중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의 방식은 콘서트이지 강의는 절대 아니다. 그의 행사가 강의라고 생각한다면 1~2천만원의 강의료는 고액 강의료가 맞다. 하지만 콘서트라고 한다면 그 수익은 적당한 수준이 맞는 것이다. 아이돌 연예인들이 대학 행사나 지방 축제 행사에서 3~4곡 노래부르고 받는 수익은 인기에 따라 다르지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콘서트 한 번에 버는 수익도 많게는 수십 억 원에 이른다. 고생한만큼 수익이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타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수익을 흔히 몸 값이라고 이야기한다. 실력이 출중한 야구선수가 고액의 연봉을 받듯이 실력이 뛰어난 연예인이 높은 출연료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개그맨 유재석이 강연이나 방송출연을 통해 버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보면 보수 언론의 아주 치졸하고 비열한 속내가 드러난다. 보수 언론의 기사를 보면 꼬투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제동은 진보성향의 연예인이다보니 힘있는 사람들의 부조리를 꼬집고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러한 언사에 보수 언론은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뒤로는 나라의 세금을 축내는 자’라고 비아냥거렸다. 진보가 평등을 중시하며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데, 김제동은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으로 프레임을 씌워 진보는 이중적이라는 결론을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이를 좀 따져보면 굉장히 이상한 논리가 나온다. 보수는 기득권층을 대변하여 능력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그들의 논리가 통하려면 김제동에게 고액의 강연료를 주던지 아니면 김제동이 고액의 강연료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김제동의 자격을 이야기하면서 강연료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려면 김제동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연예인들의 출연료는 모두 대폭 낮춰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연료 및 출연료는 지급하는 측과 출연하는 측의 적정한 선에서 합의해서 지급하는 것이지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다. 지급하는 측에서 연예인들은 공공기관이든 사설기관이든 자신의 인지도와 출연 난이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몸값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이 적당하다고 판단되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김제동 강연료도 소속사에서 제시한 가격에서 합의를 통해 일부 낮춘 정황이 있음에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진보 성향 연예인의 정당한 경제행위를 편향적으로 보도함으로 해서 모든 진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을 하려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예전처럼 어리석지않다. 메이져 언론사가 그동안은 가짜뉴스와 힘을 이용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세상을 바꿨지만 이제 많은 국민들은 그들의 오래된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보수언론은 자신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가쉽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치졸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비판거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러한 보수언론의 뒤에는 누가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끊임없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