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가 필요하나 #2

  제사의 의미가 변하는 것은 신분제 사회의 붕괴와도 관련이 많다. 봉건사회에서 최상위 권력자가 제사라는 의식을 하면 그 아래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된다. 나름의 법도를 만들어 엄중한 분위기에서 제사는 거행되는데, 이게 그 사회의 모두가 따라야하는 불문율로 정착된 것이다. 하지만 신분상 평등한 사회가 되고 합리적 사상이 현대인에게 보급되면서 불문율은 깨지고 있다. ‘당연히’라는 말에 의문을 가지다보니 ‘굳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충효가 목숨 같았던 시대에 ‘당연히’에 의문을 품는 것은 매우 불경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에는 충에 대한 의미가 사라졌고 효에 대한 관념도 과거보다는 약해졌다. 부모에 대한 효는 남아있지만 보다 합리적으로 의식이 변했다. 과거는 어떠한 부모라도 낳아줬으니 우선 고맙다고 여겨야했는데 지금은 낳아줬더라도 어떻게 길러졌는가에 따라 부모다움을 논하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 사랑과 정성으로 자녀를 키운 부모야 부모 대접을 당연히 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는 ‘그래도 부모는 부모다.’라는 비호를 받기는 어려워졌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과거에는 삼년상을 치르고 죽을 때까지 제사를 지내며 효를 표현했지만 현대에선 그런 것들을 할 수도, 할 사람도 없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사후에 대한 의식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면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가구가 줄어들고 있다. 1인 가족의 수가 늘어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과거처럼 음식 장만에 북적북적한 명절 풍경이 줄어들고 있다. 명절에 주어지는 긴 연휴 동안 가족여행을 가기도 하고 외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곤 한다. 변화되는 풍조에 기성세대들도 굳이 차례를 지내야 하는지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차례를 꼭 지내야 한다는 사람과 차례를 생략하자는 사람 간의 갈등이 집안 내에서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명절과 제삿날의 의식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많은 집안에서 맏이가 제사 의식을 하는 것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봉건사회에서는 토지가 재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재산 상속에 있어 맏이에게 제우답(祭佑畓)의 명목으로 다른 형제들보다 많은 토지를 할양했었다. 그러한 정서가 아직까지 남아서 맏이는 제사를 관장하게 된다. 그러다 맏이가 죽으면 제사가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랬을 경우, 많은 집에서 분란이 일어난다. 둘째는 제우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고 대신 그의 아들이 형의 재산을 상속 받았으므로 조카가 제사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조카의 입장에서는 형이 죽었으니 동생이 제사를 이어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합의가 되더라도 후폭풍은 남는다. 제사를 지내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을 떠안기는 상당히 부담이 된다. 특히 제사를 많이 지내는 집일수록 분란은 더 크다. 제사라는 것이 모든 형제 집안이 협심해서 준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바쁜 현대인들에게 모두가 시간을 동시에 내서 같은 노력으로 준비하기는 쉽지가 않다. 누구는 매번 늦게 오고 누구는 매번 빨리 와서 준비를 하다보면 노동의 불평등으로 갈등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특히 제사 준비를 많이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갈등이 벌어지곤 한다. 농업이라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같은 동네에서 살던 봉건 씨족사회와는 달리 현대에는 형제들끼리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주 왕래를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제사에서만 만나는데 갈등부터 생기다보니 제사로 인한 분란이 자주 생기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제사를 떠안는 것은 사후 자녀에게 큰 부담을 지어주는 것이라 또한 꺼리게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사는 앞선 이야기보다 순기능이 많다. 주기적으로 가족들 얼굴도 보고 안부를 물으며 정성이 담긴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조상을 기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효를 가르치는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역기능이 많은 제사는 오히려 집안의 단합을 해치고 자녀들에게도 안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남녀평등의 시대에 가부장적인 제사 관행으로 인해 여성 노동이 강요되고, 그러다보면 제사가 끝나면 부부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필자는 이런 경우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형제 집안이 모두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해서 제사 준비에 공평하게 노동이 분배되고, 특히 남녀 노동에 있어서도 평등이 있다면 불만이 적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끝나고 나서 다음에 또 참석하고 싶은 행사가 된다면 제사는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불협화음이 난다면 제사는 안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명절에 차라리 간단하게 조상에게 예를 갖추고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집안의 평화를 위해 좋을 것이다. 각자 명절을 보내더라도 평소에 자주 만나거나 통화를 통해 안부를 묻기도 하고 SNS 등을 통해 유대관계를 유지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제사의 순기능을 살릴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제사를 지내거나 안지내도 되는데 굳이 갈등이 많은 상황에서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제사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악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는 사자(死者)의 행사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제사는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들이 좋은 풍습을 물려주었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변형해서 살릴 필요가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명절의 풍습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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