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의 새로운 패러다임, 패시브하우스

석탄, 석유, 천연 가스 같은 화석에너지와 원자핵 분열을 이용한 원자력에너지는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꿨습니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드는 대규모의 전기는 현대사회의 발전을 뒷받침했죠.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에너지원을 책임져 온 화석연료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문제로 인해 마음 놓고 사용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한편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3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이 화석연료보다 깨끗하게 많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안전에 소홀할 경우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이처럼 에너지원과 발전방식은 저마다 나름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야경이 상징하는 현대사회의 발전은 화석과 원자력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shutterstock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각국의 환경과 필요에 맞게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발전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인데요. 이 국가들은 충분한 전력을 안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려 왔습니다. 바로 ‘에너지 전환’이죠. 우리나라도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과 발전방식의 변화만으로는 에너지의 세대교체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대규모로 전기를 생산하던 이전과 다르게 낭비되는 전기를 줄이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발전방식을 도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종 소비자들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모여야만 에너지의 전환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와 시민 의식의 변화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주거공간 등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것이 의식 변화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되어 왔는데요.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라는 설계 공법은 90년대부터 친환경‧ 저에너지 건설공법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패시브 하우스란 햇빛 같이 자연에서 주어지는 열을 난방에너지로 활용해 에너지 사용을 줄여주는 주택입니다.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수동집’, 즉 패시브 하우스라고 불리게 된 것이죠.

캐나다 알타 호수에 있는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을 두껍게 해서 열을 붙잡아 적은 에너지로도 쾌적한 실내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든 저에너지 주택을 말합니다. © passive house canada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재가 일반 주택에 3배에 달하는 30cm나 되며, 열회수형 환기장치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내부에서 나가는 따뜻한 공기로 데워 열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냉난방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한겨울에는 실내 온도를 20℃로 유지하고 한여름에는 26℃로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는 패시브 하우스가 대중화됐으며 우리나라에도 패시브 하우스를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건축 회사가 생겼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패시브 하우스의 원리를 나타낸 그림. 단열재를 매우 두껍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PHI

노원구에 있는 태양광아파트 단지, ‘이지하우스’의 모습입니다. 이 아파트는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이용해 난방 기구를 돌리며 단열재를 두껍게 만든 패시브 하우스 공법도 적용했습니다. 이 ‘제로에너지’ 아파트의 목표는 이름대로 에너지 소비를 제로로 만드는 것입니다. ©노원구청 블로그

하지만 에너지 전환 시대의 주택은 단순히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가정에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미래 주택의 모습이지요. 미래 주택은 화석 연료와 원자력을 전혀 쓰지 않는, ‘제로 에너지’, ‘에너지 자립’ 주택이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주택 100만 호 보급을 목표로 신재생에너지 주택 보급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베딩턴 제로에너지 단지의 모습입니다. 지붕에 있는 태양광 전지로 필요 전력의 20%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 wikimedia/Tom Chance

현재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주택은 태양광 주택입니다. 태양광 주택이란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태양전지 모듈을 베란다, 지붕, 옥상 등에 설치하고 여기서 생긴 에너지를 바로 이용하는 주택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17년을 기준으로 총 25만 여 가구의 태양광 주택이 있습니다. 가구당 생산해내는 전력량이 많지는 않지만 국토부에 따르면 노원에 입주한 에너지 자립주택인 ‘제로에너지’ 공동주택은 연 97만원에 달하는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베딩턴 제로에너지 단지’(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 bedZED)도 패시브 하우스 공법과 태양광 발전을 합친 주택입니다. 지하에는 빗물과 오폐수를 정화해 화장실 물과 정원용수로 사용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주택단지를 넘어 마을 전체가 제로 에너지 하우스인 곳도 있는데요. 바로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의 ‘보봉(vauban)’ 이라는 마을입니다. 보봉마을은 제로에너지 하우스가 아니라 ‘플러스에너지 하우스’입니다. 플러스에너지하우스는 자체적으로 생산한 에너지가 쓰고도 남는 주택이라는 뜻입니다. 보봉마을은 지붕 전체가 태양광 전지로 돼 있으며, 태양열을 이용해 물을 끓이는 장치도 있습니다. 지하에는 쓰레기, 바이오매스를 태우는 보일러가 있어 난방을 보조하기도 합니다. 보봉마을은 이렇게 생산한 전기를 판매하는 데 그 수입은 우리 돈으로 가구당 평균 13~15만 원이라고 합니다.

에너지 소비를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 프라이부르크의 보봉마을입니다. ©swiss-architects

보봉마을에는 독일 건축가 롤프 디쉬(Rolf Disch)가 직접 설계하고 살고있는 주택, ‘헬리오트롭(heliotrope)’이 있습니다. 헬리오트롭은 태양의 궤도를 따라 회전하며 태양광을 모으는 회전형 주택인데요. 이름처럼 태양을 따라 회전하는 태양광 전지가 달려 있어 고정형 태양광 설비보다 15~20% 높은 발전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환기와 채광, 단열에만 신경 쓰던 과거의 패시브하우스가 더 적극적으로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액티브하우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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